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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렸다네. 마치 신기루처럼.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사람처럼.”증거가 없었다면 주치의도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그러나 청신용대출한도조회이 주고 갔다는 선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주치의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환자가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목재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내게로.”주치의가 목재 병을 환자의 손에 넘겨주었다.
환자는 병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이 안에 든 걸 마시면 내 병이 아주 씻은 듯 나을 거라고 하더군. 허허.””회장님, 설마 그 말을 믿으시는 건…””나는 지쳤다네.”회장은 딱 잘라 말했다.
“한 가지만 묻지. 내가 이걸 마시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가?””…”주치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도 현대 의학을 총동원해 겨우 목숨만을 붙여 놓았을 뿐.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 할 수 있는 단계였다.
말을 하지 못하는 주치의를 보고서 회장이 혀를 끌끌 차다 말했다.
“만약 내가 이걸 마시고 잘못되거든 말이야… 내 묘비에 이렇게 새겨 주게. 고건희 회장,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병마와 싸우다 이곳에 묻혔다고.””회장님…”의사로서 당연히 막아야만 하건만.
주치의는 비장한 얼굴로 마개를 열고 있는 고건희 회장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고건희는 병을 들어 안에 담긴 액체를 힘겹게 들이켰다.
꼴깍꼴깍.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입안에 다 털어 넣고서, 그는 이 병을 남기고 간 청신용대출한도조회에 대해 떠올렸다.
그의 눈빛을 되새겼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사내라면 믿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고건희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약을 모두 마시고 나자.